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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램의 글쓰기

15일차, 프랑스가 좋았던 이유

by 다3 202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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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까를라 부르니 노래를 듣다가 기억났다. 내가 왜 프랑스를 좋아했었는지.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상급 가수가 새 앨범을 가지고 무대에 섰는데, 입술도 바르지 않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그리고 평소에도 입기 좋은 편안한 의상을 입었다. 이래서 내가 프랑스에 매료됐었다.

마음이 편안하고 충만했었다.

 

파리에 갔을때 지하철에서 멍 때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나라처럼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없는 이유 말이다.

열차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골격, 체격, 키, 몸무게, 피부색, 머리색, 모질 등 그 어느것 하나 통일 시킬 수 없었다. 심지어는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기준도 모호했다. 남자보다 체격이 좋은 여자도 있고, 반대도 있다. 사랑도 그렇다.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쁘다'의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 사람의 외적 매력을 특정 단어로 규정하지 않는다.

화장을 했는지 안했는지, 살이 빠졌든 말든 상대방의 외모에 신경쓰지도 언급하지도 않는다.

 

머리색 한가지만 튀어도 지하철에서 확 티나는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환경이다. 어찌보면, 키, 몸무게, 체형, 머리색, 모질 모두 비슷한 우리나라에서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선 자연스레 보다 높은 기준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문화적으로 대화의 시작이 대부분 외모인 것은 너무 아쉽다. 예뻐졌네, 살 빠졌다, 오늘 왜이렇게 창백해, 오늘 어디가 화장했네 등등.. 특히나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편한 이야기는 바로 닮은 연예인을 찾는 부분이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를 닮았다. 어떤 연예인을 닮았는지 궁금하지도 알고싶지도 않다. 행동이나 걸어온 행적도 아닌 단순한 외모만으로 연예인과 비교하는 부분은 정말이지 이해가 안된다. 회식 자리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닮은 연예인을 떠올리느라 고민하던 모습은 내 기준 코미디였다.

 

개인보다는 단체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고, 잘 어울리고 있다는 위안을 외모에서 또한 받고 싶은 심리일까 고민해본다. 물론 외모를 중시하는 정도는 개인별로 편차가 클 것이다. 외모를 중시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이다.

다만 인간과 인간이 만나 외모 위주의 대화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아쉽다. 논의 할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지 않을까.

 

특정 외모를 추구한다는 것은 비교를 전제한다. 또한 허상의 무언가를 향해 계속해서 달리는 것이다. 스포츠엔 골인 지점이 있고, 고생 끝에 낙이 있지만, 외모엔 끝이 없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비교의 대상은 무한하다. 그 끝은 언제나 자존감 하락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나를 볼때 꾸밈이 필요한 여자 ㅇㅇ이가 아닌, 그저 인간으로 자연스럽게 봐주길 기대한다.

 

화려한 조명도, 외모 셋팅도 없어서 까를라 부르니의 노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본질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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